잘자요 고양이
평화로운 어느 날 오후, 하윤백은 작전 보고서를 검토하는 대신, 소파에 앉아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미간에 새겨진 미세한 주름은 평소와 같았지만, 스코프를 들여다보는 대신 그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뜻밖에도 SNS의 한 게시물이었다. ‘고양이는 인중을 부드럽게 문질러주면 하품을 하다가 잠이 든다’는 내용의 짧은 영상. 영상 속 고양이는 주인의 손길에 맥없이 하품을 연발하더니 이내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었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좋아요’와 함께 ‘우리 집 냥이에게도 성공!’ 이라는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하윤백의 분석 시스템이 전례 없는 데이터에 직면했다. 고양이, 인중, 자극, 수면 유도. 이 네 가지 키워드는 그가 평생 다뤄온 전술 데이터베이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이질적인 변수였다. 그의 시선이 소파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얼마 전 가족이 된 러시안 블루 ‘윤이’가 웅크린 채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는 잠시 윤이에게 이 가설을 적용해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내가 ‘남편이랑 꼭 닮았다’며 애지중지하는 경호 대상 2호에게 검증되지 않은 작전을 실행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만약 실패하여 윤이의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한다면, 아내의 행복도에 미세한 균열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것은 그가 용납할 수 없는 오차였다.
그의 시선이 다시 옆으로 움직였다. 이번엔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나른하게 눈을 감고 있는 아내, 서낙랑에게로. 그녀는 평화로운 오후의 정적 속에서 가장 완벽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고양이. 아내. 그의 머릿속에서 두 존재가 미묘하게 겹쳐졌다. 아내는 고양이처럼 가끔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그를 당황시키기도 하고, 햇살 아래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논리 회로에 오류가 발생한 것 같은, 위험하고도 달콤한 가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이 가설이 인간, 특히 나의 아내에게도 적용된다면?
그것은 지휘관으로서의 하윤백이라면 절대 고려하지 않았을,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충동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남편으로서의 하윤백은 달랐다. 그의 심장 부근에서 미세한 박동의 상승이 감지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작전을 앞둔 긴장감과는 다른, 순수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뒤섞인 반응이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조용히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번 했다. ‘작전명: 태양 재우기. 목표: 가설 검증 및 대상의 수면 상태 유도. 예상 소요 시간: 불명. 성공 확률: 미지수.’ 그는 스스로에게 장난스러운 브리핑을 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서낙랑의 코와 입술 사이, 매끄러운 인중 위에 내려앉았다. 그의 손끝은 언제나 네메시스의 차가운 방아쇠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영상에서 본 것처럼 아주 느리고 일정한 속도로 그녀의 인중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신경은 손끝의 미세한 압력과 그녀의 반응을 감지하는 데 집중되었다. 1초, 2초…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낙랑은 미동도 없었다. 실패인가. 역시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는 터무니없는 가설이었나. 그가 실망감과 함께 손을 거두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응?"
잠결에 웅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서낙랑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떠졌다. 그녀의 분홍색 눈동자는 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 눈앞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윤백은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췄다. 마치 적진 한가운데서 정찰 드론이 발각된 것 같은 아찔한 기분이었다. 그의 완벽한 포커페이스가 흔들릴 뻔했지만, 그는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하며 태연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심장은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뛰고 있었다.
"왜… 그래…?"
그녀가 잠에 잔뜩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하윤백은 대답 대신, 다시 한번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인중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의 손길에 서낙랑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저 남편의 뜬금없는 장난을 받아주려는 듯,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녀의 입이 작게 벌어지더니, 아주 커다란 하품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하암-." 눈가에 눈물까지 살짝 맺히게 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형태의 하품이었다. 하윤백의 눈이 경이로움으로 살짝 커졌다. 가설이… 입증되고 있었다.
그는 놀라움을 감추고 더욱 집요하게, 하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손길로 작전을 계속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인중을 스칠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는 마치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연달아 하품이 새어 나왔다. "하암… 윤백아… 자꾸… 하품이…" 그녀는 웅얼거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그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그의 무릎 위로 더욱 깊게 몸을 기댔다. 그리고 몇 번의 작은 하품 끝에, 그녀는 이내 고른 숨소리를 내며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근새근,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소리였다. 작전 성공. 목표는 완벽하게 수면 상태에 진입했다.
하윤백은 잠든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SNS의 불확실한 정보가, 그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에게 완벽하게 적용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것은 그 어떤 물리 법칙이나 전술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의 머릿속 데이터베이스는 이 결과를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졌다. ‘분류: 초자연 현상? 아니, 애정 기반 상호작용? 카테고리: 고양이과 포유류 공통 특성?’ 그는 이 터무니없는 분석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냉철한 지휘관 하윤백의 얼굴에 떠오른, 보기 드문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는 아내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긴 속눈썹, 붉은 입술, 그리고 그의 손길이 머물렀던 인중까지.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그는 충동적으로 몸을 숙여, 방금 전 자신이 그토록 집요하게 문지르던 아내의 인중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가 놀라,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입술에 남은 부드러운 감촉과 달콤한 아내의 체향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심장이 다시 위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 감정을 ‘작전 성공에 따른 만족감’으로 정의하려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아내를 안아 들어, 곤히 잠든 그녀가 깨지 않도록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그녀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에도, 그는 한참 동안 침대 곁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SNS 검색창에 새로운 키워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고양이, 깨우는 법.’, ‘고양이, 좋아하는 것.’, ‘고양이, 골골송의 원리.’ 그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자,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의 태양. 그의 고양이. 하윤백은 오늘, 아주 중요하고도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무궁무진하고 즐거운 작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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