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감기
2025년 8월, 찌는 듯한 더위가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피어리스 본부의 냉방 장치는 쉴 새 없이 가동되었지만, 외부의 열기는 끈질기게 건물 안으로 스며들어 공기를 후텁지근하게 만들었다. 서낙랑은 아침부터 간질거리는 목을 애써 무시하며 서류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목감기는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제는 말 한마디를 내뱉는 것조차 칼날을 삼키는 듯한 고통을 동반했다. 그녀는 연신 마른기침을 참으려 애썼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콜록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혀끝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그녀는 무심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손바닥 위로, 붉은 피가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아, 너무 세게 했나.' 서낙랑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책상 위 티슈를 몇 장 뽑아 손에 묻은 핏자국을 대충 닦아냈다. 그저 기침을 심하게 해서 목 안쪽의 약한 모세혈관이 터진 것뿐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단 한 사람만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맞은편에서 다음 작전 보고서를 검토하던 하윤백의 군청색 눈동자가, 마치 초고속 카메라처럼 그 장면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쨍그랑-! 마치 유리가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이 하윤백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붉은색은 전장의 포화보다, 빌런의 피보다 더 끔찍한 경고 신호였다.
다음 순간, 하윤백은 이미 서낙랑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움직임에는 단 0.1초의 오차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서낙랑이 피를 닦아낸 휴지를 낚아채듯 빼앗아 들었고,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평소 어떤 상황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당혹과 공포,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충격이었다. 그의 시스템에 'CRITICAL ERROR'라는 붉은 경고창이 수백 개는 뜬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고, 완벽하게 다려진 제복 차림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의 호흡은 미세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쥐어짰다.
"지금 이게… 뭐야."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활화산 같은 불안감이 들끓고 있었다. 서낙랑은 그의 과민반응에 오히려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윤백아. 그냥 기침을 좀 심하게 해서…"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윤백은 이미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의 손아귀 힘은 평소 그녀를 대하던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옮기는 듯하면서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변명을 들을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의무실로 간다. 지금 즉시."
그의 선언은 명령이자, 거부할 수 없는 통보였다. 그는 그대로 서낙랑을 거의 반쯤 끌어안듯 일으켜 세워 의무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다니까! 그냥 목이 좀 부어서 그래!" 그녀의 외침은 복도를 울렸지만, 하윤백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부 출혈. 잠재적 장기 손상. 미확인 바이러스 감염. 가이드 능력치 저하 가능성.' 온갖 끔찍한 의학 용어들이 그의 사고 회로를 점령했다. 복도를 지나가던 다른 대원들은 난데없는 지휘관의 박력 넘치는(?) 아내 연행 장면에 휘파람을 불거나 팝콘이라도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수군거렸지만, 하윤백의 안중에는 오직 서낙랑의 안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의무실 문을 거의 부술 듯이 열고 들어선 하윤백은 당직 의무관에게 서낙랑을 내밀며 일갈했다. "긴급 상황. 환자, 가이드 서낙랑. 각혈 증상 확인. 즉시 모든 검사 프로토콜 실시. 전신 CT, MRI, 혈액 정밀 분석. 동원 가능한 모든 의료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 그의 살벌한 기세에 의무관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클립보드를 떨어뜨릴 뻔했다. 검사 결과는 30분 만에 나왔다. 진단명은 의무관이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간단했다. '급성 인후염으로 인한 모세혈관 파열.' 쉽게 말해, 그냥 목이 좀 심하게 부어서 기침하다 실핏줄이 터진 것이었다. 의무관의 설명을 듣는 동안, 하윤백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지만, 그의 귓가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문제없다는 건가."
그의 목소리는 겨우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의무관이 "네, 푹 쉬고 따뜻한 물 많이 마시면 금방 낫습니다."라고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굳었던 몸을 풀었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프로토콜: 아내 절대 안정 가이드라인 v1.0'의 서막에 불과했다. 그날 이후, 하윤백의 과보호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진화했다. 서낙랑이 기침을 한 번 할 때마다, 그는 1초 안에 그녀의 체온, 습도, 주변 공기 중 미세먼지 농도까지 분석할 기세로 달려왔다. 그녀의 책상에는 최고급 가습기와 공기청정기가 설치되었고, 매 시간 정각마다 '목표, 수분 보충'이라며 그가 직접 끓인 배도라지차가 대령되었다.
며칠 후, 서낙랑이 탕비실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 웃음이 터져 잠시 기침을 했다. 그 순간, 탕비실 문이 활짝 열리며 하윤백이 등장했다. 그는 서낙랑과 대화하던 동료 센티넬을 향해 살벌한 눈빛을 쏘아붙였다. "지금, 내 아내의 호흡기에 무리를 주는 행위를 한 건가." 그의 목소리에 탕비실의 온도는 5도는 내려간 듯했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싸늘해졌고, 동료 센티넬은 "아, 아니, 메리아가 그냥 웃다가…"라며 쩔쩔맸다. 하윤백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낙랑의 어깨를 감싸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선언했다. "가이드 메리아, 오늘부로 모든 불필요한 대화 및 과도한 감정 표현 금지. 성대 보호를 위한 특별 조치다." 그날 이후, 서낙랑 주변 5미터 이내는 하윤백의 감시 아래 '성대 보호 특별 구역'으로 지정되었고, 동료들은 그녀에게 말을 걸기 전 하윤백의 눈치를 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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